안 보여도 괜찮아요…음악이 즐거우니까

입력 2024-02-19 17:48   수정 2024-02-20 00:19


“살면서 힘들었던 적이요? 딱히 없습니다. 음악은 즐거운 거예요. 항상 즐겁게 하려고 해요.”

일본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쓰지이 노부유키(35·사진)는 지난 16일 진행한 인터뷰 내내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다음달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을 앞두고 화상 인터뷰로 만난 그는 연신 “즐거움”이라는 표현을 썼다. 새로운 곡을 익힐 때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함에도 프로 연주자라면 응당 겪는 무대에서의 긴장도 쓰지이에겐 그저 ‘즐거운’ 일이다.
시각장애 핸디캡 극복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선천성 소안구증으로 시각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악보를 꼼꼼히 분석해 작곡가의 의도를 충분히 살려야 하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에게는 큰 핸디캡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쓰지이에게 ‘캄캄한 시야’는 전혀 장벽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의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2009년) 무대에서 누구보다 빼어난 연주력을 선보이며 공동 우승을 거머쥐었고, 세계적인 악단과 공연장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를 두고 ‘기적의 피아니스트’라고 하는 이유다. 쓰지이는 “음악은 장애랑 관련이 없다”며 “어릴 때는 ‘왜 나는 눈이 안 보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눈이 안 보여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악보를 보지 못하는 대신 매우 예민한 귀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청중에게 감동을 선사해 왔다. 어릴 때는 점자로 된 악보를 보며 곡을 익히기도 했고, 최근에는 주로 왼손과 오른손을 따로 녹음한 음원을 듣고 곡을 익힌다. 한 곡을 수백만 번씩 들으며 통째로 외우는 것이다. 곡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음악을 들으며 이미지를 상상한다고 했다. “곡이 쓰인 시대적 배경이나 관련 지식을 공부하고 조사하며 상상력을 부풀리죠. 그렇게 작곡가의 정서를 담으려고 해요. ”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는 지휘자의 숨소리를 들으며 합을 맞춘다. 실제로 팀파니 소리 때문에 지휘자의 숨소리를 듣지 못해 곡을 시작하지 못한 적도 있다고. 미묘한 숨소리를 들으며 음악의 흐름을 맞추는 쓰지이, 그의 귀가 얼마나 예민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협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현장에서 숨소리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리허설을 반복하면서 호흡을 맞춰가요.”
한국에서 여는 첫 독주회
그는 작곡가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12세에 자작곡 ‘Street Corner of Vienna’를 연주했고, 다양한 일본 영화 및 드라마 주제곡을 작곡했다. 2011년 작곡한 일본의 ‘쓰나미 희생자들을 위한 비가’를 앙코르곡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이때 눈물을 흘리며 피아노를 치는 모습으로 세계인의 공감을 자아냈다.

“피아노 연주가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히 살려내는 거라면, 작곡은 내 생각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죠. 둘 다 좋아서 뭐가 더 매력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말보다는 음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하고 잘하기 때문에 음악은 모두 저를 표현하는 수단이에요.”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15년이 지났다. 어린 나이부터 일찍이 천재성을 드러내며 프로 연주자로 살아온 쓰지이는 30대가 되면서 한층 음악적으로 무르익고 있다. “관객이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음악과 일체감을 느끼면서 연주하려고 해요. 20대에는 열정으로 연주했다면 지금은 깊이 있는 표현력을 조금은 익히지 않았나 싶어요 ”

그는 몸이 불편함에도 예술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음악은 장애 유무로 구별되지 않아요. 누구든 하나가 될 수 있는 수단이죠. 그러니 무조건 즐겁게 해내길 바랍니다.”

그는 2011년 내한해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듀오 무대에 선 적이 있다. 가까운 한국이지만 독주회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공연에서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을 비롯해 쇼팽, 드뷔시,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선보인다. 라흐마니노프는 이번에 한국에서 선보이는 첫 도전이다. 공연은 오는 3월 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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